아침일찍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잠깐 아펜젤 동네 구경 한바퀴. 평화로운 분위기의 월요일 아침. 



아펜젤 전통 문양의 장농과 침대 미니어처. 전날 묵은 스위스 할머니댁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들이다. 유치하지만 알록달록한것이 가지고 싶다.




아펜젤 마을 전경.

전날에 숙소를 찾으러 헤멜때는 이런곳인지 몰랐는데, 정말 알프스 소녀가 당장이라도 뛰어놀 것 같은 평화로운 전원 마을!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갔던 시청사 근처에서 만난 동네 할아버지는, 머나먼 한국에서 온 이방인인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시며 우리와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셨다.(당시에는 북에서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승계가 이루어진 대다, 북의 도발이 전 세계적인 이슈였고 연일 이곳의 뉴스에 방송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었다. 그래서 여행내내 만난 사람들이 우리에게 궁금했던 내용은 대부분 북에 대한 것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스위스는 많은 나라들과 국경이 접해있어서 그만큼 전쟁의 위험도 많았지만 중립을 잘 지켜냈다면서, 북의 김정은은 지금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와 헤어지면도 계속 'He is foolish..'라며 중얼거리셨다. 머나먼 나라의 시골마을에서도 관심을 갖는 내용에 대해, 정작 나는 자세하게 설명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을 정도로 얕은 역사적 이해와 낮은 정치 사회적 관심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마을을 나와 찾아간 곳은 아펜젤 치즈 농장 견학. 이날 오전에 들렸던 투어인포센터에서 아펜젤에서 가볼만한 곳이 뭐가 있는지 알아보다가 이곳 치즈가 유명해 몇몇 치즈 농장에서는 직접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체험프로그램은 대부분 사전예약제인데다가 한시적으로만 운영해서, 한 치즈농가에서 운영하는 치즈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Appenzeller Cheese 모형.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는 SCHAUKASEREI.



전시실 내부. 이곳은 특이하게 모든 전시 안내 가이드가 아이패드로 되어있다. 가이드 비용을 내면 아이패드를 대여해 주는데, 인터랙티브한 화면과, 재미있는 설명으로 자칫 별 감흥없이 둘러보고 나올뻔 했던 치즈 공장 견학이 꽤나 인상깊었다.




만들어진 치즈 보관창고.

통유리를 통해서 저렇게 켜켜이 쌓인 치즈를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치즈는 숙성된 정도에 따라 맛과 향이 강해진다고 하는데 아마 나는 갓 만들어진 치즈가 아니면 못먹을 듯.




이곳 입장료에는 아펜젤 치즈를 시식해 볼 수 있는 이용권이 포함이라 맛이 어떤지 한번 보기로 하고.

접시에 이렇게 세가지 종류의 치즈를 내어준다. 숙성된 기간에 따른 종류별 치즈였는데 일단 딱 받아들자마자 코를 찌르는 냄새가.... 가장 그나마 먹기 편한 숙성도가 오래지 않은 Classic 치즈부터 한입 맛보았는데, 아 도저히 못먹겠다.

나는 아침에 Koller 할머니 댁에서 먹은 치즈를 생각하며 입에 넣었는데, 토종 한국인 입맛에는 도저히 안맞음. 게다가 머리가 아플정도로 강한 치즈 냄새에 결국 시식용으로 받은 치즈는 아깝지만 휴지통으로. 




치즈맛은 내입맛엔 안맞았지만, 재미있는 치즈만들기 견학으로 오늘 여기 오길 잘했다며. 특히 아이패드 가이드가 마음에 쏙 든다며. 어제 하루는 힘들었지만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다음 목적지로.


다음 목적지는 드디어 우리 여행계획에 있었던 체르마트. 파라마운트사의 로고로도 쓰인 마테호른봉이 있는 그곳이다.

원래는 체르마트에서도 당연히 캠핑을 할 계획이었으나, 눈이 발목넘게 쌓인 스위스에서 캠핑을 할만한 시기는 아닌것 같아 어제처럼 또 숙소땜에 고생하지 말고 미리 숙소를 예약하기로 했다. Koller 할머니 댁에서 무료 와이파이가 연결된 덕에 하루 전날 체르마트에서 가까운 도시의 싼 호텔을 예약. 



고속도로를 타기위해 구입한 스위스 비넷을 차 유리에 부착하고. 오스트리아처럼 스위스에서도 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비넷이라는 이용권을 구입해야만 하는데, 여기는 오스트리아와 달리 기간별로 파는게 아니라 무조건 1년권을 사야한다. 하루만 이용하고 싶어도 1년짜리를 구입해야 하기에 우리처럼 잠깐만 스위스에 머물다가 가려는 여행자들에게는 좀 아까운 면이 없지않지만 그래도 매번 톨비 계산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긴 하다. 하지만 이런점 때문에 우리나가 자동차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저 비넷 사용후 부착된 스티커를 떼서 다시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하는데, 하도 그런일이 많이 일어나서 그런건지 비넷스티커는 한번 부착하면 떼어낸 후 다시 사용하기 어렵게 홈이 파여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걸 떼어내서 파는 사람들이 있던데 대단하다)





운전하고 가다가 중간에 경치좋은 곳을 발견해서 이곳에서 경치를 반찬삼아 점심을 먹고 가기로.



물가 비싼 유럽에서 매번 우리의 점심은 직접 만든 샌드위치. 

인건비 비싼 유럽이기에 음식점에서 사먹는것 보다 마트에서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 만들어 먹는게 훨씬 저렴하고 맛도 좋다.



덕분에 길가다가 이렇게 경치좋은 곳을 만나면 잠시 쉬어가면서 배도 채우고 눈도 호강하고. 조으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다시 가던길로.





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나라여서 그런지 가는길에 터널이 참 많다.



한참동안 터널을 지나고 산자락을 넘어가면서 달리고 또 달려간다.


스위스는 산자락에 위치한 국가여서, 눈이 많이 오는 겨울철에는 통제를 하는 도로들이 많다고 한다. 처음 스위스 여행계획을 세웠을때는 스위스의 인터라켓 가는 길 근처에 Grimsel pass 라는 길이 멋진 코너링과 드라이브 하기에 그렇게 멋지다고 들어서, 그림젤 패스를 가볼까도 했었는데 우리가 스위스에 도착하는 4월에는 패스가 문을 닫는다고 하여 아쉽지만 포기.


우리가 체르마트를 가기위해 지나가기 위해서는 Furka pass라는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데, 눈이 많이 와서 혹시나 패스가 닫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네비가 안내하는 길로 일단 직진.



가는 길목이 심상치 않다. 어른의 허리높이 만큼 쌓여있는 눈더미. 그래도 도로는 눈이 말끔하게 치워져있고, 앞에도 드문드문 차들이 가기에 지나갈 수 있겠지 라는 희망을 안고 Furka pass로.



그런데!!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저 거대한 눈 더미와 통행금지 표시.



하아..앞길이 구만리구나. 눈앞에 끊긴 길을 보고도 믿기지 않아 차에서 내려 이리보고, 저리 보고.



길 주위 풍경을 보니, 이 동네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눈오면 꼼짝없이 갇히겠구만.



나중에 지도를 보니 이 푸르카 패스라는 곳은 급경사가 많아 보통때도 조심해서 가야하는 구간이라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당연히 통제를 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문제는 스위스에는 이러한 pass 구간이 많다는것.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미시령, 한계령의 '령'에 해당하는 곳인데, 말이 미시령이지 알프스 산에서의 이런 고갯길 운전은 그야말로 곡예운전이다.


가려던 길은 막힌데다가, 이런 길의 정보따위 안중에도 없이 계속 막힌길로 안내하려는 네비게이션을 버리고 온전히 지도를 보고 길을 가보기로. 대부분이 산악지대라 길도 많지 않아 우리에게 주어진 옵션은 오직 한가지였다. 

아래 이탈리아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서 체르마트로 가는것.



그래서 결국 푸르카 패스를 통해 금방 체르마트 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이렇게 빙빙 돌고 돌아(이탈리아까지!)서 원래 가려던길의 4, 5배나 되는 거리를 가게 생겼다.

예상도착시간도 오후 5시에서 예측불허로.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이탈리아 구경하게 생겼네. 허허. 그나마 뚤린 길이 있다는게 어디나며 긍정마인드로 출발!



우리가 가려는 Locarno 방향 표지판이 보인다. 근처에 캠핑장 표시도 같이.



남쪽으로 내려오니 이곳은 계절이 봄이다. 좀전에 온통 눈으로 덮인 세상과는 달리 이곳에는 올해 처음으로 보는 개나리가 활짝!



호숫가 옆에 위치한 도시라 그런가 휴양지 느낌이 물씬!



길가에 핀 꽃.



어디 남부 프랑스라도 온 느낌.





여행 후 처음으로 봄이라는걸 만끽하며 드라이브.



여기서부터는 이탈리아 입니다. 역시나 심플한 국경안내.




왠지 부자들의 휴양지 같은 동네.



길가에 여기저기 푸릇푸릇한 나무들과 남국의 야자나무들. 잠깐만 아랫동네로 내려온건데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호숫가를 끼고 마음껏 드라이브.

관광버스가 가득한것으로 미루어 인기 휴양지인듯한 도시를 지나치고.



이제 다시 북쪽으로.


저기 뭔가 국경 검문소 같은게 보이는데,



오호, 국경이다. 이탈리아의 영역은 여기서 종료라는 안내표지.

들어올때도 심플하게, 나갈때도 심플하게.



따뜻한 봄을 잠시나마 만끽할 수 있었던 이탈리아를 떠나 다시 북쪽 스위스로 올라오니 겨울로 계절이동.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일수가 있지. 게다가 이제는 눈발까지 날리기 시작한다.



조금 오다가 그치겠지 생각했던 눈이 심상치 않다. 날씨가 어두워 지면서 갑자기 눈보라로 바뀌기 시작. 게다가 점점 오르막길.

이대로 계속 가도 되는건가, 우리는 이런 날씨에 대비한 스노우 체인도, 스노우 타이어도 없는데. 그래도 도로에 스위스 번호판을 단 차들이 간혹가다 보이기에, 그래 현지인들도 가는데 우리도 갈 수 있겠지 하며 일단 최저 속도로 가보는데.

시속 20km로 가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차가 헛바퀴 돌면서 미끄러진다. 지금까지 한참을 올라왔길래 이 눈길에 다시 내려간다는것도 위험하고, 그냥 가던길을 계속 가자니 불안하고. 아 어쩌지...


일단 우리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핸드폰에서 외교부 비상연락 앱도 켜놓고, 비상 전화번호도 저장해놓고. 다시 가보자.

눈은 더 심하게 내리고, 아까부터 한 두대씩 보이던 차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차가 계속 미끄러지고 눈보라가 너무 심해 시야도 잘 안보이고, 정말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어릴때 보았던 한 캐네디언 가족이 여행중에 눈속에 고립된지 몇일만에 발견, 결국 아빠는 죽고 엄마와 아이들만 살아났다는 뉴스 기사가 생각나고. 그때 당시에는 그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와보니 '그게 우리 얘기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별의 별 생각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조금 더 가다보니 산 정상의 휴게소 같은 건물이 보여서 일단 정지, 저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서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다. 안에 들어가니 주인아저씨와 어느 가족손님 한 테이블이 있었다. 주인아저씨한테 혹시 스노우타이어나 스노우체인같은게 있는게 물어보고. 아저씨는 당연 그런거 없다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른 우리는 '밖에 눈이 많이 오는데 우리는 스노우체인도 없고 그래서 큰일이다.' 라고 설명하니 이 이탈리아계 주인아저씨 쿨하게 그냥 가면 된다고 한다. 읭?


이 아저씨 우리 영어를 제대로 알아들은거 맞는건지, 내가 아저씨! '위 윌 다이(We will die, 우리 죽을지도 몰라요)' 라고 말하자 이 아저씨 또 쿨하게 '노 프라블럼' 이라고 외친다. 그러고는 아저씨가 우리더러 어디까지 가냐고 묻길래 체르마트까지 가야한다고 말하자 또 '노 프라블럼' 이라고 대답하더니 1km만 더 가면 된다고 한다. 이 아저씨 뭔소리래, 체르마트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뭔 1km지? 여튼 아저씨와의 원활한 대화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아저씨의 '노 프라블럼' 만 믿고 1km만 더 가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며 다시 차에 올랐다.


눈보라를 헤치며 가다보니, 어라? 정말 1km 뒤에 눈이 그쳤다. 정확하게는 눈이 그쳤다기 보다 1km 부터 고갯길이 끝나고 도로에는 열선이 깔리고 군데군데 터널이 뚤려있다. 우리는 서로 다행이다를 외치면서 아까 아저씨 말이 진짜 맞네. 1km만 가면 된다더니 진짜네!를 반복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고갯길이 끝나고 산을 넘어 내려온 길.



아까와는 달리 너무나 평화로운 길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가 죽을똥 쌌던 그 길은 Furka Pass와 마찬가지로 스위스 패스 중의 하나인 Simplon Pass. 그리고 그 휴게소가 위치한 곳은 심플론 패스의 정상이었던 모양이다. 휴게소 주인아저씨가 말씀하신건, 휴게소에서 1km만 더 가면 패스가 끝나고 도로에는 열선이 깔려있어서 위험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던것 같다.

위험한 고비를 한고비 넘기고나서 속으로 기도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아펜젤을 떠난지 8시간 만에 도착한 마을 Randa. 이번에는 예약한 호텔을 찾으러 빙빙빙.



이곳에도 한바탕 눈이 내렸다 보다.

무릎까지 푹푹빠지는 눈밭을 헤치며 겨우겨우 호텔을 찾아 들어간 시간은 우리가 예상한 시간보다 훨씬 늦은 10시.

주인 아주머니도 우리가 오기로 한 시간에 오지 않아 눈때문에 못오는건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단다. 호텔 레스토랑은 이미 다 닫았다며 걱정하시는 아주머니께 괜찮다고 말하고 보니 저녁식사시간도 훨씬 넘긴 시간이었는데 너무 긴장한 탓인지 그동안 배고픈것도 모르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찾아온 안도감과 공복으로 우리의 비상식량인 라면을 밥통에 열심히 끓여서 고픈 배를 채우니 이게 바로 천국이구나.


오전까지만 해도 아펜젤 치즈공장 구경하면서 여기 오기를 참 잘했다 좋다 행복하다를 연발하다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에 알프스 산자락에서 죽을고비를 맞이하고. "인생 참 한치 앞도 모르는거구나"라는 생각이 든 이날의 여행.




Posted by 빙그레씨



우여곡절끝에 머물게 된 아펜젤의 B&B.

할머니 할아버지 내외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생각외로 너무나 잘 정돈되고 깔끔한 방.



2층의 맨 구석진 방이 우리의 첫 스위스에서의 하룻밤을 보낼 곳.

아늑한 다락방 분위기의 알프스 소녀감성 물씬 자극하는 곳. 너무 조으다.



왠지 아이들 방이었을 것 같은 이곳.

침대 사이즈가 성인 사이즈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신의 동양인의 사이즈엔 꼭 들어맞아서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좁지만 화장실도 깔끔깔끔.

민박집이라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방안에 화장실도 있고, 좋구나!



방 한켠에는 아펜젤 전통 문양의 서랍장이. 어릴때 할머니댁에 가면 늘 보아왔던, 할머니와 세월을 같이 했던 오래된 서랍장을 생각나게 했다.



뭐, 환영한다는 인사말이겠지?


아펜젤은 스위스에서도 독일이랑 접해있어 사용언어가 독일어권이라 할머니와 대화는 되지 않았지만 만국공통어인 바디랭귀지로 의사소통.



스위스 B&B 공식 허가증 같아 보였던 인증마크. Gaste Zimmer. Gaste = 손님, Zimmer = 방. 즉, 게스트하우스란 뜻.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일주일 독일에 있다 왔더니 왠만한 단어는 대충 알겠다.

이 곳은 N.Koller 할머니 할아버지네.



문 앞에 써있던 저 암호같은 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Koller 할머니 댁에서 꿀잠 잔후, 다음날 조식 먹으러 1층 내려가는 길.



1층 응접실 한켠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전통 문양의 장농이.




피아노 위에 놓여진 아펜젤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들.



Appenzeller bier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림으로.



미리 세팅되어 있던 식탁. 



할머니께서 빵과 잼을 가져다 주시며, 커피마실건지 쥬스를 마실건지 물어보신다.

난 당연 커피.



할머니의 취향을 엿볼수 있는 커피잔.



아펜젤이 치즈로 유명한 도시기에, 할머니께 혹시나 아펠젤 치즈를 맛볼수 있냐고 여쭤보았더니 흔쾌히 "그럼, 물론이지" 라며 햄과 치즈를 가져다 주셨다. 원래 치즈를 잘 못먹어서 그냥 맛이나 보려고 꺼낸말이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커다란 치즈덩어리를 꺼내오시더니 숭덩숭덩 그자리에서 저만큼이나 많이 썰어주셨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밥먹을 때 김치가 빠지지 않듯, 스위스에서 주식에 항상 빠지지 않는 치즈. 그래서인가 다들 냉장고에 커다란 치즈 한덩이씩은 있는것 같았다.



곱게 차려진 이날 아침 식단.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빵도 맛있고, 잼도 맛있고, 햄도 그리고 의외로 치즈도 맛있어서 너무나도 만족했던 아침식사.



짧게 하룻밤 신세진 스위스 Koller 할머니 댁. 여유만 된다면 더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던 곳.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가야할 길이 멀었기에 할머니 할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스위스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날 잠깐 머물고 떠난 동양인 여행자 둘을 기억하고 있을까?


+숙소

N.Koller GuestHouse(B&B)


숙박료

2인 1박 (조식 포함, 무료인터넷) : 110CHF(스위스프랑) 



Posted by 빙그레씨

우리의 이번 목적지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나라, 요들송의 나라 스위스위스!


처음 우리가 여행 루트를 짤때 스위스는 많은 욕심내지 말고 그냥 가고싶은곳 딱 한군데만 가보자며, 마테호른봉으로 유명한 체르마트만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인생이 뭐, 항상 생각대로 되는것은 아니기에 퓌센에서 체르마트까지는 거리가 상당한데다(게다가 산지대라서 시간도 한참걸리는 루트), 오후 늦은시간에 출발해서 저녁에 잠잘곳도 필요하고 해서 멀지 않은 스위스 어딘가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체르마트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래서 결정한 곳이 바로 아펜젤.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이름의 작은 도시이지만(사실 우리도 이날전까지만 해도 이 도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치즈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기대했던건 바로,




이러한 구릉구릉한 초원 한자락에서 해보는 캠핑!!!

정말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뛰어놀것 같은 초록 잔디가 넓다랗게 펼쳐진 초원지대에 텐트 하나 쳐놓고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을 쳐다보면서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캠핑!



잔뜩 부푼 기대를 안고 스위스를 향해서 출바알. 룰루랄라.



퓌센에서 스위스 아펜젤로 가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를 거쳐서 가게 된다. 덕분에 오스트리아 땅도 밟아보게 생겼네. 



이 길로 가면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브레겐츠 방향이라고 알려주는 도로 표지판. 표지판에 오스트리아(A)와 스위스(CH) 방향이라고도 나와있다. 드디어 프랑스,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를 가보는구나. 조금 설렘.



"여기서부터는 오스트리아 입니당". 

EU의 많은 국가들이 국경에 저렇게 도로표지판 마냥 국가표지판(?)으로 이곳부터 다른나라임을 표시.



잠깐 거쳐가는거긴 하지만 드디어 오스트리아 땅. 


독일은 고속도로 이용료가 따로 없지만, 오스트리아는 비넷이라 불리는 고속도로 이용 티켓을 구입 후 차량에 부착해야지만 한다. 그 비넷이라는게 최소 7일권부터 있기에 정말 잠시 몇시간, 아니 몇분간만 지나가기 위해 이 비넷을 사야하는게 아까워서 왠만하면 오스트리아를 안거쳐가거나, 아님 국도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야속한 네비게이션은 자꾸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로 우리를 안내. 하는 수 없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7일권 비넷 구입.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는 국경 건너온지도 알지못하고 건너옴.

EU국가들중에서는 따로 국경에 별다른 표시가 없는곳도 많고 그래서 국경을 넘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한국에서 로밍신청한 핸드폰 통신사에서 "스위스, 분당 발신요금 얼마, 수신요금 얼마" 라고 보내주는 문자때문에 "아, 우리가 지금 스위스에 와 있구나" 하고 알게 될 정도.




처음 마주하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



마을을 통과해 꼬불꼬불한 오르막길로 계속 올라가니 산등성이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보인다.



꽤 많이 올라왔는지 아까 지나온 마을이 깨알같이 보이고.




오르고, 오르고 계속 올라간다. 산꼭대기까지 갈 작정인가.



다시 마을이 나타나고,



왠지 도시 초입 분위기. 구릉구릉한 마을. 이제 다 온걸까?



반가운 아펜젤 표지판. 직진하면 나오나보다!



어라, 근데 계속 올라간다?

그리고 올라가다보니 지나오면서 보아왔던 구릉구릉한 초원은 온데간데 없고 눈덮힌 산자락이 나타나기 시작...


목적지로 설정한 캠핑장에 도착하긴 했는데, 아뿔사!!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스위스에 왔다는걸 우리가 깜박했다.

유럽의 왠만한 상가나 공공기관도 문닫는 시간이 상당히 이른편인데(우리나라에 비해서), 스위스 같은 경우는 5시면 칼같이 문닫고 집에 간다고. 우리가 캠핑장에 도착한 시간은 5시 2분. 혹시나 하고 리셉션에 가보니 정말 칼같이 문닫고 퇴근했다...


이럴수가. 


혹시나 하고 캠프사이트를 한번 둘러보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캠핑장은 눈으로 덮혀있어서 카라반이나 캠핑카를 가지고 온 캠퍼 외에 텐트는 눈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텐트를 치고 잔다면 바닥에 쌓여있는 눈을 다 치워야 할텐데, 이러나 저러나 난감하긴 마찬가지.



저 아래 마을 풍경은 평화로워 보이는데. 

아펜젤에서 캠핑장은 이곳 한군데 뿐인데다가, 시간이 늦어서 다른 도시의 캠핑장을 가도 마찬가지 일거라, 일단 오늘 잠잘곳을 알아보러 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다.



독특한 무늬의 아펜젤 전통 건물.



마을에 들어가서도 헤메기는 마찬가지. 워낙 일방통행길이 많은데다가 도로가 좁아서 이 길을 들어가도 되는건지 아닌건지 알수도 없고. 결국 에라모르겠다 해서 들어갔더니 역주행. 지나가던 행인이 거기 들어가면 안된다며 손짓하는데, '우리도 방금 알았다구요 ㅠㅠ'. 결국 같은자리를 몇 번이나 돈 후에 찾아간 마을 중심지.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는게 느낌이 심상치 않다. 생각해보니 이날이 일요일이라 왠만한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것.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관광객일뿐. 문연곳은 호텔 아니면 펍. 왠지모를 불안감을 안고 오늘 묵을 숙소에 대해 알아보러 투어인포센터에 갔다.


아뿔싸! 투어인포센터도 영업시간이 5시까지였다. 어쩌지? 애꿎은 닫힌 문만 한번 흔들어보고.


갑자기 오늘 잘곳이 불투명해지자 불안감이 엄습. 여기는 산꼭대기 도시라, 다른데 갈곳도 없는데. 일단 이 도시의 호텔들을 다니면서 빈방이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는데, 아니 여기는 호텔직원들도 일요일이라 그런가 보이지도 않는다. 몇군데 호텔들은 그냥 로비에 비치되어있는 브로셔만 가지고 나왔는데 역시 스위스 물가, 가격이 상당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남편이 호텔한군데 들어가서 이곳에서 가장 싼 호텔이 어디인지 물어보자고 제안. 아니 남의 영업장에가서 '야 여기서 젤 싸게 파는데가 어딘지 알아?' 라고 물어본다는게 가능한거야?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 심정으로 그나마 스태프가 보이는 호텔에 들어가서 "여기 1박에 얼마니?, 아 우리한테 너무 비싼데 혹시 다른데 싼 호텔 알고 있니?" 라고 얼굴에 철판깔고 질문.


다행히도 그 친절한 스태프는 동네 호텔들에 모두 전화를 걸어가며 각 호텔별 가격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에겐 너무나 부담되는 가격들.

어쩌지, 어쩌지. 우리가 대략 난감하고 있는데 스태프가 좀전에 말한곳이 여기서 젤 싼데이고 이 도시에서 그 보다 싼 호텔은 없다고 알려주는데 1박에 대략 우리나라돈으로 25만원 정도 였다. 하루에 3만원하는 캠핑장에서 자다가 갑자기 25만원이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는 돈이 없는데 혹시 이 동네에 호텔말고 게스트하우스나 민박같은데는 없니?' 라고 물어보니 두세군데정도 게스트하우스가 있단다! 그리고 또 친절하게도 그중에 가장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에 전화를 걸어 하루숙박 금액과 빈방이 있는지도 대신 확인해주고. 금액도 나쁘지 않고(다른곳들에 비하면) 다행이 빈방이 한개 있다고 해서, 그 곳에 묵기로 결정.


정말정말 친절한 호텔 스태프 언니덕에 오늘밤 잘곳이 생겼구나. 



호텔 언니가 알려준 게스트하우스 가는 길. 이동네는 관광지랑은 조금 떨어진 정말 거주자들만 모여있는 한적한 주택가 같았다.



드디어 도착! 우리의 첫 스위스 숙소. 아펜젤 전통 가옥 스타일의 B&B. 

이날은 정말 다행이다를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외쳐댔었는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론은 해피엔딩!



Posted by 빙그레씨